"승무원이 된다고 제 삶이 바뀌는 게 아니었어요.
그걸 깨닫는 데 6년이 걸렸고, 그 6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6년 동안 40번 넘게 떨어졌습니다.
호텔리어, 학교 선생님, 영어학원 강사, 빵집, 카페, 예식장… 생계를 이어가며 수십 번의 면접장을 드나들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외항사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의 직업을 3년 만에 내려놓았어요.
지금 저는 '인생 면접 코치'로 불립니다. 취준생들에게 합격 스킬이 아닌, 자기 이해와 확신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이아웃풋클럽 30기부터 33기까지 네 기수 연속으로 함께하며, 3년간 멈춰 있던 계정을 3개월 만에 1만 팔로워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은 그 여정을 함께 한 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서야 보인 것들

저에게 승무원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어요.
6년이라는 시간을 바친 인생의 목표 그 자체였습니다. 2022년, 마침내 그 목표를 이뤘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 인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6개월 만에 매너리즘과 현타가 왔어요. 승무원을 준비하던 6년보다 더 크게 무너졌습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 못나서 쳐다보기도 싫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괜찮아질 거라며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해야 더 이상 위만 바라보며 나를 부족하게 보지 않을까.
그 질문 하나를 붙잡고 셀프 고립의 시기를 보냈어요.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데 빠져있었죠.
그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과정이, 지금 제가 하는 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면접은 취업을 위한 맹목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제가 운영하는 면접 코칭 서비스의 이름은 The Limterview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인생 면접 코치'라 부르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면접과 관련된 일은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시작은 면접이 아니라 마인드 코칭이었어요. 제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코칭을 받으신 분들이 이걸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면접 코칭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코칭 방식은 기존 취업 준비 시장의 문법과 달랐어요.
취업 준비 시장에서는 자기 이해보다 '일단 취업'을 외치며 빠른 방법론을 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처음엔 제 방식이 환영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타협하지 않았어요. 이전에 제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분들과 코칭을 진행하며 이 일을 하는 의미가 희미해졌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문의가 와도 제 코칭 철학에 부합하는 분들만 선별하겠다는 기준을 세웠어요.
처음 서너 달은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문의하시는 분들 다 받아야 하는 거 아냐? 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그 기준을 내려놓지 않았어요.
하이아웃풋클럽에서 찾은 것 - 스킬이 아닌 태도
2025년 7월 말 승무원을 퇴사하고, 8월부터 부업이었던 코칭을 본업으로 돌렸어요.

같은 시기에 하이아웃풋클럽 웨비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참여해보면 좋겠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마음이 바뀐 건 10월 웨비나였습니다.
연사였던 샬롯님의 사례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어요.
얼마나 자신의 일에 진심이면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오고 지금도 그 과정을 묵묵히 밟아나가고 계실까.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해야겠다'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퇴사 후 제가 가장 갈증을 느꼈던 건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과 환경'이었어요.
회사 안에서 동료들과 대화할 때면 삶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느꼈고, 회사 밖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기가 더 어려웠거든요.
그렇게 30기 첫 오전반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네 기수 연속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사실 내향형인 제가 커뮤니티 활동을 잘할 수 있을까 의심했었습니다. 근데 하이아웃풋클럽은 제가 알던 커뮤니티와 완전히 달랐어요. 단순 친목이 아니라 성장에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한 곳. 기수활동의 모든 프로그램이 그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구요.
커뮤니티 활동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않았던 게 정말 다행이에요.
처음 오전반을 참여하던 날, 멤버분들의 경력과 이력을 보며 '내가 이 분들과 함께해도 될까?' 주눅이 든 것도 있었어요.
근데 그 순간도 잠깐이었습니다.

- 피어리뷰에서 자기 일처럼 피드백을 주고, 레퍼런스를 공유해주고, 연말에 회고 모임을 열어주신 따뜻한 소피아님.

- 커피챗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고, 멤버분들이 차곡차곡 성장하는 모습에 뿌듯해해주시는 멋진 어른 성현님.
- 학교 선생님으로서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겉으로 보이는 것을 쫓지 않고 자기가 더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존경중독님.
그 안에서 저는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이아웃풋클럽 안에서 배운 특별한 가치는 단순 '스킬'이 아닌 '태도'였어요.
앞으로 더 잘 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멤버분들에게 배운 태도만큼은 절대 잊지도, 잃지도 않고 싶습니다.
발사 후 조준: 3년의 벽을 3개월 만에 넘다
하이아웃풋클럽 합류 전, 제 인스타그램 비즈니스 계정 @limterview_는 3년째 팔로워 6,500~7,000명대에서 멈춰 있었어요.
승무원 일을 하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심할 때는 두 달 넘게 피드를 비워둔 적도 있었거든요.
하이아웃풋클럽에서 배운 원칙이 그 정체를 깨뜨렸어요.
발사 후 조준.
저는 콘텐츠에 대해서라면 스스로 제로베이스라고 생각했어요.
완벽하게 알고, 제대로 준비하고, 완성된 상태로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로만 쌓여 있던 소재가 수두룩했습니다.
처음엔 "생각 없이 올려도 괜찮을까?" 망설였어요.
하지만 정작 해보니 올려야 비로소 제 부족함과 개선 방향, 그리고 다음 실험 포인트가 보이더라구요.
30기부터 33기까지, 계정 운영 이후 처음으로 매주 5개의 콘텐츠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4개월 동안 70개가 넘는 콘텐츠를 업로드했어요.
그 결과, 3년간 걸렸던 성장이 3개월 만에 일어났습니다.

팔로워 1만 명 달성.
고작 1만인데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가장 큰 전환점은 수강생 후기 콘텐츠를 처음 제대로 올려본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승무원이 본업이라 모집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올리지 않아도 됐고, 큰 어려움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본업으로 전환하니 후기야말로 고객 전환에 결정적인 역할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공식적인 모집 공지도 하지 않았는데 상담 신청을 많이 문의주셨어요.
흔들리지 않은 기준이 만든 결과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면서 저도 변했습니다.
제가 취준생들에게 진짜로 전하고 싶은 면접 준비 방식을 콘텐츠에 담으면서, 이 일을 하는 의미를 되새기고 다졌어요.
불안해도 하이아웃풋클럽이라는 세이프 존 안에서 용기 있게 4개월 동안 70개 넘는 콘텐츠를 올리면서, 저도 제 스스로 이 일을 하는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 1월부터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문의와 대기 신청자들의 사전 설문지 내용의 결이 달라진 거예요. 서비스에 대해 인상 깊었던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시고, 대기자 신청서 한 통이 A4 한 장을 가득 채울 만큼 진심으로 변화를 원하는 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1월 말 정규 5기 모집 때, 제가 정한 이상적 고객 기준으로 선별해서 걸러내도 목표 인원의 2배가 넘는 신청이 들어왔어요.
모집 기간이 끝난 뒤에도 다음 달까지 상담을 대기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6년 준비한 승무원을 3년 만에 퇴사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나만의 확고한 코칭 철학을 가지고 퇴사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결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
제가 코칭에서 가장 잘하는 건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끌어내는 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능력은 6년간의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생긴 '악습관'에서 비롯되었어요.
과거의 저는 끊임없이 타인과 저를 비교했어요.
"나는 장점 하나 없이 단점만 수두룩한데,
다른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매력적이고 멋질까."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지금은 그 과정을 지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확신을 가지면서 깨달았습니다. 타인의 강점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이 시선이, 코칭이라는 일과 만났을 때 제 강점이 된다는 것을요. 결점이 일로 연결됐을 때 강점이 되더라구요.
저와 대화하다 보면 "책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내 생각보다 내가 더 괜찮은 사람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게 제 역할이에요.
상대방이 미처 몰랐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돕는 것.
동행이라는 이름

저에게 하이아웃풋클럽이란 뭐냐고요?
동행.
사실 제가 대학 시절 홍보대사로 활동할 때 그룹 이름이 '동행'이었거든요.
졸업하고도 여전히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에요. 하이아웃풋클럽을 떠올리면 그런 기분이 들어요.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은 인연.
사회는 쓰디쓰지만, 하이아웃풋클럽 안은 따뜻해요. 이런 곳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혼자 해결하고 혼자 버티는 방식에 익숙했던 사람이, 여기서 처음으로 함께 만드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어요.
혼자였다면 절대 떠올리지 못했을 부분까지 팀원들이 고민해주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낯설었지만 따뜻했습니다.

피어리뷰 덕분에 카드뉴스가 잘 통하는 제 캐릭터도 찾았어요.
- 불편함이 있는 환경이야말로 성장하는 환경이라는 것
-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모두 하이아웃풋클럽이 가르쳐준 것들입니다.
면접에서 커리어로, 커리어에서 인생으로
제 코칭의 슬로건이자 만트라예요.
면접은 회사 취업만을 위한 맹목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면접에서 던져지는 질문을 통해 자기 이해와 확신, 그리고 자신만의 인생 기준을 세워가는 여정이에요. 회사, 직무, 역량, 경력보다 지원자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우선시 되어야 해요. 사고방식이 바뀌면 면접은 암기와 첨삭의 영역이 아니게 됩니다.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답변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게 돼요.
그리고 저 자신이 그 증거입니다.
승무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40번의 실패를 견딘 게 면접의 끝일 줄 알았는데,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으니… 그 새 목표까지 가는 데 100일은 최선을 다해보고, 그때 가서 '포기'가 아니라 재조준해볼게요.
앞으로 꿈꾸는 것은 거창하지만 또 단단해요.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한국에 새로운 면접 코칭 방식을 널리 알리는 것.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어요.
이제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성취하든, 지금 현재의 행복과 마음의 안정을 우선하는 삶을 꿈꿉니다. 지금 내 모습과 삶을 즐길 수 없으면 그 목표에 도달하고도 행복할 줄 모르거든요.
40번의 불합격이 가르쳐준 것.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이아웃풋클럽 코치 프로필: 미쓰림
✨ 면접 준비가 취업만을 위한 맹목적인 과정이 아닌
자기 확신을 위한 여정이도록
면접 본질을 전하는 면접 코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