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커리어에서 가장 막막한 순간은 지금 내리는 선택이 앞으로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릴 것처럼 느껴질 때이다.
첫 직장을 고를 때, 연봉이 좋은 곳과 배울 수 있는 곳 사이에서 고민할 때, 지금 하는 일이 나와 맞는지 헷갈릴 때, 우리는 쉽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를 넘어
"이 선택이 내 커리어를 망치는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최근 커리어에서 중요한 선택을 앞둔 한 시점을 지나오며 주니어 커리어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취업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쁨이 아니었다.
작년 연말, 나는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을 통해 취업 제안을 받게 됐다.
취업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기쁘다는 감정은 거의 없었다.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오히려
'이럴 거면, 나 왜 나왔지?'
나는 3년차가 되지 않은 주니어 AI 연구원으로, 일하는동안 논문과 연구 중심의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능동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어진 일이야 다 해냈다.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면 점점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이 필드에서 나는 오래 버티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연구 말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결심하고 퇴사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주니어 AI 연구원의 퇴사, 이유는 분명했다
AI 시대에 주니어급 인력이 가장 빨리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기술을 더 깊게 파기보다는, 기술을 설명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보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I 교육, 부트캠프, 콘텐츠 관련 채용 공고들을 살펴보며 커리어 방향을 바꾸려 시도했다.
다만 요즈음의 채용 시장은 실무 경력이 필수아닌 필수인지라 최종 면접까지 간 적은 있어도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 와중 취업 제안이 들어왔던 것이다.
'첫 직장 선택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판단을 더 늦췄다
요즘처럼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취업 제안은 우선 달콤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제안은 마냥 달기는 커녕 불안한 것이었다.
취업 제안에 크게 흔들렸던 이유는 단순했다. 내 발로 뛰쳐나온 업계로 돌아가는 선택이 과연 맞는것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해본 적도, 관심 두어 본 적도 없는 분야라는 점이 걸렸다. 사수도 동료도 없는 환경에서 생판 처음 마주하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전혀 자신이 없었다. '배우면서 하면 되지'라고 넘기기에는 내 몫이 될 책임들이 무거웠다.
무엇보다 주니어 커리어에서는 첫 선택이 중요하다는 말.
사회초년생이라면 한 번은 들어보았을 그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왜 이 말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을까
첫 선택,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직장이라기엔 어려워도 이력서 상 첫 경력인 학생연구원 이력은 실제로 나의 연구원으로서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까.
하지만 이렇다 할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첫 선택은 무조건 신중하라'는 말은 선택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더 망설이게 만든다.
이 선택이 내 커리어 패스를 굳혀버리지는 않을지, 나중에 돌아보고 "그때 왜 그걸 했지?"라고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뚜렷한 기준도 정말 가고 싶은 방향도 없는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이어서일까.
그래서 나는 취업 제안에 대한 답을 미뤘다.
하지만 답을 미루는 동안 마음은 더 불편해져갔다.
적성 안 맞는 길을 택하면 진짜 망하는 걸까?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었다.
답을 미루는 동안에도 시간과 공백기는 그대로 쌓여가고 있었다.
고민을 혼자 붙잡고 있기도 어려워 하이아웃풋클럽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좋을지, 이렇게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취업을 택하는 게 맞기는 한건지.

커뮤니티에 물어본 주니어 커리어 고민, 그리고 돌아온 답변들
정말 많은 분들이 나의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주셨다. 그리고 각자의 경험에 기반한 정성스런 답변들을 남겨주셨다. 돌아온 답변들은 의외로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 하고 싶은 걸 아직 못 찾았다면, 일하면서 찾아도 된다.
- 이것저것 다 하느라 물경력같아 보여도, 그 경험들이 쌓인 뒤 돌아봤을 때 결국 커리어가 되기도 한다.
- 업계마다 다르겠지만 5년차 이하라면 어느정도 흘러가는 대로 일해도 괜찮다.
그 외 커리어 선택에 대한 다양한 경험담을 나누어주셨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다만 그 말들만으로 가진 고민이 바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가슴에서는 여전히 "내 선택은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고, 나는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것만 같아 무서웠다.
고민 끝에 다시 정의하게 된 '진짜 잘못된 선택'
받은 조언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며 며칠을 더 고민했다. 고민할수록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고 있는 건 '잘못된 선택'이 맞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더 무서웠던 건 따로 있었다.
공백기가 리스크로 느껴지기 시작한 지점
퇴사 이후의 시간을 떠올려봤다.
공부를 한다고 앉아 있지만 집중력은 오래가지 않았고, 사이드 프로젝트와 포트폴리오는 시작하려다 말기를 반복.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봐도 뭔가 제대로 했다 말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퇴사를 한지도 어느새 넉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정해둔 공백기의 마지노선은 반 년이었고, 잔고에 대한 걱정도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지금 나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건 '불확실한 선택'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취업 제안을 다시 보게 됐다.
그제서야 취업 제안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이 선택이 내 커리어를 영원히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 맞는 길이란 걸 확인하고 나오는 것도 경험이라면, 취업 또한 도피성이 아닌 확고한 생각에서 나온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단점도 분명했다. 스타트업이고, 나의 연차 대비 혼자서 책임져야 할 영역이 넓은 환경이었다.
단점만 보지 않기로 했을 때 보인 것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단점들은 곧 기회이기도 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책임져야 할 영역이 넓다는 건, 그만큼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끌고 가며 나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일해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줄이고, 일하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다룬다는 점은 내가 막연히 바라던 ‘사람과 맞닿은 일’과도 완전히 어긋나지 않았다.
완벽한 답은 아니었지만, 공백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지금의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줄 수 있는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확신은 없다. 다만 이건 분명해졌다.
취업을 하기로 했든, 아니든, 어떤 하나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을 택하든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확신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주니어 커리어에서 더 위험한 건 확신 없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상태라는 것.
완벽한 계획도, 참고할 수 있는 커리어 로드맵도 없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답이 아닌 무엇이든 선택하고 해내는 것이란 것.
우선 선택하고, 그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
안 되면 나오면 된다는 말이 그렇게나 위로가 되었던 것도 모든 선택권은 결국 내 것임을 알게 해줘서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비슷한 고민 앞에 서 있다면 확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멈춰 세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움직여 본 뒤에야, 한참 나아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 하니까.
그 말을 믿고 우선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보면 좋겠다. 결국 주니어 커리어에서 나를 지켜주는 건,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움직이려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고민의 지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았으면 한다.